melodie de nuit







1. 내 기억을 두개로 쪼갰을 때, 전반부에 해당하는 나는 L을 위해 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지만
갖지 못한 것들을 꽤 많이 갖고 태어났고, 그 대신 '의지'가 없었다. 어쩌면 목적도. 어쩌면 L은 그런 내게
최후의 안정적인 존재여서 목적이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내 별 것 없는 잔여물들을 모아 
탑을 만든 다음 L에게 몰아주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끝의 모습을 상징화 해 두어야,
'그것이 오지 않는 한' 매순간을 끝으로 몰아가도록 헷갈리는 일이 없을 테니까. 

의외로 그것이 다가오기 전에 L이 끝을 냈다. 내가 예상치 못한 반격이었고, 배신이었다. 

-
내 삶의 목적은 L이라고 생각했는데, 
L이 사라지고 나자 삶에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착각하고 있었던 건지도. 



2. C가 말하길, 몸은 내버려둬도 시간이 가면 그대로 늙어가지만 머리는 반드시 밥을 떠먹여줘야 나이를 
먹는단다. 그 머리가 먹는 밥은 시간적 여유를 필요로 한다. 풀 타임 직장을 다니게 되었을 때, 그나마 
짜투리로 쉬는 시간도 고갈된 체력 회복을 위해 소진하게 되면서 내 뇌는 정지했었다. 기포처럼 솟는 
의문들에 대한 해답을 궁리할 수 있었던 뉴욕에서의 '기차' 통근 따위도 서울 지하철에서는 허락되지 않았고.

이 시간은 돈으로도 환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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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 썼던 글들을 하나씩 읽어보기로 마음 먹었는데, 그때의 나는 내게 너무 낯설다. 
이 이글루를 햇수로 9년째 쓰고 있는 나라니. 처음엔 짐작이나 했을까?

그럼 여기서 내게 질문 하나. 
과연 2003년의 나를 살펴보며 내 머리가 9년만큼의 나이를 먹었다고 인정할 것인가. 
아무래도 9년 전의 내가 너무나도 허접하고 자신만만하므로, 
그때를 동경한다. 동문서답이지만. 
과거의 나는 동경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요즘 들어서 서서히 깨닫고 있다. 어른들의 '왕년에'는 이런
심리에서 기초한 것일지도. 





3. C의 역할의 심을 완전히 모방해서 틀을 만들었다. 그리고 원래의 나를 곱게 몰딩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진짜 나'도, 'C'도 허상같긴 마찬가지다. 애초에 역할의 심을 캐릭터화해서 고정해두는 순간부터 
나는 허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걸지도. 그나마 그것이 오로지 온전한 나였다면, 적어도 나- 라는 자신감이
후회의 방패가 되어줄 수는 있었을텐데. 꼼짝없는 오해의 공격 앞에서 나는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의 방패는 고운 몰딩의 매끈한 겉표면 뿐이었다. 어쩌면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몰라. 
시간이 흐르며 감가상각이 가속화 되겠지만. 

개그에 대한 야욕은 접어야겠다. 
그럴 리 없겠지만 말이다. 






4. a walk to remember


사소한 것.

나는 '사소한 것'의 정의를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때는 내가 받을 상처를 최대한 줄여보고자 모든 것을
 장난과 사소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정의한 그 작은 액자속에 들어차지 못한 
나머지를 고스란히 지금의 내 몫으로 남겨두었다.
그래서 나는 기억을 처리하지 못하고 이따금 계속해서 상처를 받는 것이다.

기억의 공격을 받을 때마다 나는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그 시공간 속에서 
아무것도 아닌 일을 겪으며 뛰던 심장소리와, 숨소리와, 가엽게 움추린 마음은 여전히 살아있다. 
트라우마라고 간단히 정의내리고 돌아서면 그만인걸까.

-
이건 L이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썼던 토막글. 2009년 6월 8일.





5. 반드시 경험을 통해서만 습득할 수 있는 진리들이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반드시 고통을 수반하고.
그렇다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느냐. 
가치는 욕망에 비례한다고 본다. 막연한 짐작이 해결할 수 없는 욕망을 낳는다면, 경험에서 체득한
진리는 현실적인 욕망을 자극하거나- 적어도 해결할 수 없는 욕망을 잠재운다고 본다. 일단은.

인간군상의 심리에 대해서는 운이 나빴던 고로 유치원 때 이미 완벽하게 체득한 바 있었다. 
하지만 몬스터들이 속한 카테고리에 있어서는 너무나 운이 좋았던 고로, 2년에 걸친 생ㅈㄹ을 겪고서야
-그나마 내가 가해자라 다행- 진리 수박의 겉이나마 핥게 되었다. craving 상태의 내가 하는 말은 
술에 취한 사람의 헛소리만큼이나 부질 없다는 것. 그것은 나에게도,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도.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비싼 물건들 대부분은, 그걸 구입하고 또 내게 선물했던 사람들과 내가 지속했던
관계의 기간보다 훨씬 더 내 곁에 오래 머무르고 있다. 대표적으로 2002년에 선물받았던 이 우든 스피커 
세트부터. 

어린 K에게 몇년간의 트라우마와 상처를 줄 수밖에 없었던 건, 내가 중심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도 사람에 대해 무지했고, 발화와 해석에 대한 임의적 틀을 이해하지 못했다. 언제나 오해와 
희망고문의 연속이었을는지도. 
16살의 나는 그렇게 시작했다. 

그리고 End를 향해 손 내밀기-라는 제목을 달고 꽤 여러번의 포스팅을 했었던 것 같다. 
이제 나는 이해할 수 없으려나. 











by silence | 2011/08/16 03:12 | blank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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